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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의 취미

한성 Gtune GK993B 적축사용기

회사 책상 위의 한성 Gtune GK993B 적축. 책상이 지저분하다.

어쩐지 이 블로그에는 키보드 이야기만 쓰게 되는 것 같다.

 

작년 말 부터 올해 여름까지 일을 쉬다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로 복귀했다.

한 8개월 가량을 쉬다가 회사로 돌아간 것인데, 그 쉬는 동안 새로 흥미가 생긴 분야가 키보드였다. 사실 그 전부터 키보드에 대한 흥미는 있었고 실제로도 집에서는 더키 Shine4 체리 갈축 모델을 쓰고 있었지만, 쉬는 동안 앱코 카일 광축 게이밍 키보드도 구입했고, 키캡도 여러 개 구입하는 등 키보드에 대한 관심이 취미 수준으로 늘어났다.

 

그러던 차에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된다는 것은 새 키보드를 들일 수 있는 굿 찬스인데, 이걸 놓칠쏘냐.

와이프에게 이야기 해서 새 키보드를 하나 구입하기로 결정.

 

내 논리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 보다도 길고, 그 중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는 시간이 가장 긴데 키보드는 좋은 것을 써야 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키보드는 갈축이라 회사에서 쓰기에는 소음이 좀 있고, 예전에는 팀장이라 눈치를 안봐도 괜찮았지만 이번에는 팀원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시끄러운 키보드를 쓰면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좋은 키보드지만 소음이 적은 제품이 필요하다...

 

뭐 내 논리와 상관 없이 와이프는 다시 시작하는 직장생활을 응원 해 줄 요량이었는지, 우려와는 달리 흔쾌히 키보드 구입을 허락 해 주었고, 129,000원을 주고 한성 Gtune GK993B SKYBLUE 화이트/적축 제품을 구입했다.

 

이 제품을 고른 이유는...

1. 적축이 써 보고 싶었고 적축을 쓴다면 처음은 꼭 체리축으로 써보고 싶었다. 걸림이 전혀 없는 리니어 타입의 스위치는 어떤 느낌인지, 광축과는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2. 그리고 블루투스로 세개 까지 멀티페어링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상 위에 무선충전 거치대를 놓고 거기 핸드폰을 충전시키면서 필요하면 블루투스로 카톡을 보낸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3. 디자인이 예쁘다. 하얀 바디에 돌치스타일키캡(좋게말해서 돌치스타일이고 돌치 짝퉁 ㅋ)이 예쁘다.

는 세가지 이유였다.

 

그리고 다시 일을한지 어언 4개월... 즉 4개월간 한달에 20일 씩 이 키보드를 써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1. 회사에서는 블루투스 키보드, 멀티페어링 기능을 쓸 일이 없다.

책상에 있을 때는 PC 카톡을 쓰고, 미팅이나 회의를 할 때는 작고 가벼운 로지텍 무선 키보드를 쓰게 되더라. 아무리 텐키리스고 작고 가벼워도 기계식 키보드를 들고 다닐 이유는 없다. 멀티페어링은 내 사용패턴에서는 큰 장점은 아니라는 이야기. 블루투스 키보드라 좋은 점은 그냥 무선 키보드로 쓸 수 있다는 점인데, 회사 책상만 두고 쓰다보니 그냥 유선으로 계속 쓰게 되더라. 

 

2. 적축이라도 기계식은 기계식이다. 시끄럽다.

당연히 청축보다야 조용하지만, 갈축과의 타건음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타이핑 할 때 알루미늄 보강판을 키캡이 바로 때리는 느낌이 드는데, 갈축보다 더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 사무실은 전화 통화소리도 있고, 전반적으로 쥐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다보니 크게 민망한 상황은 아니지만 아주 조용한걸 원하는 사람은 최소한 저소음 적축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도다다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꽤나 신경 쓰일듯.

 

3. 키보드 영문 시인성이 최악이다.

스카이블루 컬러의 영문 각인이 정말 예쁜데, 돌치 배열에서 연회색 키캡에 스카이블루는 진짜 눈에 안보인다.

가뜩이나 안보이는데 빛까지 반사되어서 너무 안보인다. 예쁘니까 참고 쓴다는 느낌. 사실 이 문제는 구입하기 전부터 후기로 많이 보았던 부분인데... 남들이 입을 모아서 지적하면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참고로 요즘은 딥블루라고 스카이블루 대신 남색으로 된 버전이 새로 나왔더라.

 

4. 사무실에서 쓰는데 텐키가 없는 키보드는 최악이다.

엑셀을 꽤나 많이 쓰는 편이고 숫자 입력할 일이 좀 있는 편인데 텐키가 없으니 너무 불편하다. 첫 사진에서 눈치 채신 분들이 계실것 같지만... 그래서 무선 텐키패드를 하나 구입했다 ㅋㅋㅋㅋㅋㅋ

 

단점만 엄청나게 적어놓았는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키보드를 만족하며 사용중이다.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키보드 중에서도 상당히 애착이 많이 가는 제품이다. 이 키보드의 장점을 나열하자면...

 

1. 체리 적축의 타건감은 정말... 재미있다.

타건감이 너무 좋다. 강하게 타이핑 할 때랑 약하게 타이핑 할 때 타이핑의 맛이 다르다. 강하게 따다다닥 칠 때의 느낌은 통쾌한 쾌감이 있고, 가볍게 키보드 위를 손 끝으로 구른다는 느낌으로 칠 때는 스프링의 반발력이 손 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타이핑이 무겁진 않아서 두두두둥 하는 느낌으로 타이핑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청축(클릭)이나 갈축(넌클릭)에 비해 적축, 흑축 같은 리니어 계열의 키감이 심심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적축의 키감이 갈축보다 더 재미있더라. 

 

2. 가성비, 갓성비

체리스위치, 무선, 블루투스 멀티페어링, 예쁜 디자인... 10만원대 초반의 가격은 가성비를 넘어서 갓성비다. 물론 요즘 기계식 키보드 중에 싼 제품은 2만원대 제품도 있지만, 체리유사축들에 비해 오리지널 체리축만이 줄 수 있는 만족감이라는 것도 분명히 있다. 갬성론 까지 가지 않아도 체리축의 키감이 유사축들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거기에 무선, 블루투스 멀티페어링... 키캡은 퀄리티가 별로라는 사람들의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PBT에 인쇄 퀄도 좋고 색감도 좋다. 키캡만 해도 따로 산다면 아무리 싸게 줘도 2만원 이상은 될 것 같은데...

 

3. 예쁨

시인성을 포기하고 예쁨을 선택할 정도로 예쁘다.

클래식한 돌치컬러배열이지만 하늘색 혹은 민트색 영문 인쇄와의 조화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자꾸 정이가는 디자인이다. 심플한 유백색 하우징도 깔끔하고... 시인성만 빼면 시각적인 만족도는 95/100점 정도는 줄 수 있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어차피 바밀로 매화나 고래같은 화려한 카보드를 쓰긴 어려우니까 그런 부분을 고려하면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는 최고의 제품이 아닌가 싶다.

 

4. 의외의 퀄리티

사실 나는 한성의 저가형 키보드 라인도 좋아한다. 4,5년 전 한성에서 카일 갈축 키보드를 사서 쓰다가 퇴사하면서 회사 동료에게 주고 나온적도 있고, 그 뒤로 한성 오테뮤 갈축 제품도 오래 썼다. 오테뮤 갈축은 집에서 지금도 종종 쓴다. 저가형 제품들도 스위치의 퀄리티가 문제지(나는 카일/오테뮤 스위치도 만족하면서 사용했다.) 한성의 하우징이나 키캡이 문제인 적은 없었다.

그리고 한고무, 한무무 등 한성의 고가형 키보드 제품은 최근 품질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인데, 이 제품(한성 무선 기계식 키보드, 한무기)도 역시 퀄리티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스위치 스프링 소리 같은 건 아예 없고, 통울림도 거의 없다. 높이조절 받침을 올리면 약간 통울림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키보드와 책상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느껴지는 공간음이지 통울림이 아니다. 높이조절 받침을 내리고 타이핑 해 보면 전혀 울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브리드 스태빌을 채용한 스태빌라이저도 정말 스태빌이 잘 잡혀서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사실 한성은 컴퓨터 분야에서 저렴하고, 품질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는 브랜드로 인식이 박혀 있는데, 적어도 키보드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수준이라고 인정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성이 출시한 기계식 키보드의 종류가 웬만한 해외 유명브랜드가 출시한 종류에 비해 모자람이 없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 있어서 최근 출시하는 한성 키보드 제품들은 호평이 많다.

 

상기의 단점들 때문에 사무실에 있는 키보드를 집으로 가져가고, 집에 있는 다른 키보드를 가져올까 고민중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이 키보드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집에서 쓰는 것이 이 키보드를 더 잘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마 국내 유일의 체리식 정방향 블루투스 키보드 일 텐데, 거기에 디자인 예쁘고 가격 합리적인데 더 바랄게 뭐 있으랴.